한경직기념사업회

세계가 인정한 유일한 한국의 종교인, 추양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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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사역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었던 한경직은 기독교 신앙만이 구국의 길임을 강조하였다. 신의주 제2교회에서 그는 교회에 몰려들었던 청년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설교에 강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해나갔다. 그 후 일제시대가 끝이 나고 해방이 되었을 무렵 신의주자치위원회를 조직해 평화적으로 일제가 빠져나가고 한국인이 다스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당시 신의주 내에서는 사건사고가 한 건도 없었고, 일본 사람을 상대로 원수를 갚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없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북한에 세워진 공산주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되자 한경직은 신의주자치위원회를 기반으로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조직하여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산당이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하자 교인들은 한경직에게 월남할 것을 강권하였고 한경직은 부득이하게 월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와중에서 한경직의 애국애족 정신은 더욱 빛을 발했다. 한경직은 여러 목사들과 함께 1950년 대전에서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하여 구제활동 및 민주주의 교육에도 앞장섰다. 또한 한경직은 1951년 3월 유엔군의 한국 파견에 감사하는 정부의 사절로 위촉되어 유엔을 방문하였으며, 유엔과 미국 정계를 비롯한 교계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한국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한경직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군 복음화 운동에 앞장섰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군목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수많은 군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는 국가적 차원에서 안보문제를 생각할 때 국민 개개인의 정신적 자세, 가치관, 애국심, 협동의 정신, 희생의 정신 등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유물론 공산주의와 대치한 한국의 현실에서 유신론인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군의 정신 전력에 크게 기여한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