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기념사업회

세계가 인정한 유일한 한국의 종교인, 추양 한경직 목사
추양
  • 생애
  • 사역
  • 추모
사업
  • 사업회 소개
    • 인사
    • 목적
    • 연혁
    • 조직
    • 약도
  • 사업회 활동
    • 교육
    • 장학
    • 홍보
    • 출판
참여
  • 후원
  • 봉사
안내
  • 알림
  • Q&A
  • 사역
  • 홈 > 추양 > 사역
교육사역
한경직은 교회와 교육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신념아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하는 교회,’ ‘교회교육’이 교회의 참 모습이며 사명임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교육신학의 실천자요, 교육신학적 목회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경직은 영락교회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그는 어린이 교육뿐만 아니라 장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4년 1월부터 주일학교 내에 장년부를 신설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장년부를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는 당시 교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 장년 성경공부 참석자가 예배 참석자 수와 같을 만큼 그 열의가 대단했다. 또한 대상의 특수성에 따라 1946년 농아부를 시작으로 신입부, 영어성경부, 성경반을 만들어 조직적인 교회교육을 실시했다.

한경직의 교회교육은 주일학교 울타리를 넘어 주간학교, 성경구락부, 기독교학교 설립 등으로 이어졌으며, 지성과 감성, 신앙과 학문, 영성과 전문성이 갖춰지는 전인적 교육을 그 목표로 했다. 한편 한경직은 가정 내에서의 교육 또한 강조하여 교회교육에서도 학부모 교육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회, 학부모 모임을 조직해 교회 교육과 가정교육이 연계되도록 했다.

한경직은 여러 기독교 학교를 세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나라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헌신했다. 1947년 월남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대광 중고등학교를 세웠고, 1952년에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성경구락부 모임을 만들었다. 이는 1959년 영락중학교와 영락상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가 영락상업고등학교가 1981년에는 영락고등학교로 재개편되기에 이른다. 한경직은 학교를 세우는 일 뿐만 아니라 재건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1946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폐교된 보성여학교를 보성여자중학교로 재건하였고, 1938년 폐교된 숭실대학이 1953년 다시 일어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밖에도 한경직은 통일을 준비하여 여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영락여자신학교를 설립했고, 서울여자대학교를 비롯해 장로회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이사장으로 봉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