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기념사업회

세계가 인정한 유일한 한국의 종교인, 추양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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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역
한경직은 평생 동안 자신이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며, 가난한 자, 약하고 소외받는 자, 슬픔을 당한 자들을 돕고 그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가 신의주 제2교회를 담임하던 시절인 1939년 고아원인 보린원을 세워 이를 이후 양로권을 겸한 복지시설로 발전시켜 나갔다.

월남한 이후에도 한경직은 영락교회를 주측으로 해서 여러 가지 사회봉사 사역을 펼쳐갔다. 1947년 서울에 보린원을 재건하고, 피난민을 위하여 천막촌을 만들어 이들이 남한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었으며, 피난민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한국전쟁이 나자 1951년 전쟁 미망인과 그 자녀들을 위하여 한국 최초로 부산에 다비다 모자원을 세웠으며 다음 해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영락 경로원을 만들었다. 그 후 여러 복지사업들을 총괄하여 진행할 수 있는 재단법인 영락원이 1957년 정부의 인가로 만들어지게 된다.

1981년에는 관악구청의 제의를 받아 철거민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합실 어린이집을, 1990년엔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위한 영락어린이집을, 1994년에는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인 영락애니아의 집을 만들었다.

한경직은 영락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와 손을 잡고 구호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한경직은 밥 피어스(Bob Pierce)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거리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구제하기 위한 전문 구호기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밥 피어스는 미국에서 본젹적은 모금활동을 전개하였고, 한경직은 한국에서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이 월드비전의 시작이 되어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발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인은 비록 북한 공산당의 치하에서 박해를 경험했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화해를 이루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1980년대 말 시작하게 된다. 이 운동은 50여개 기관단체가 연합한 범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후에는 불교와 천주교 뿐만 아니라 해외교민들과 외국 기업까지 동참하게 되었다. 14년 동안 이 운동을 통해 민족애와 인류구원의 소망이 한국과 북한을 비롯 여러 국가에 퍼져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