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기념사업회

세계가 인정한 유일한 한국의 종교인, 추양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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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사역
한경직은 신의주 제2교회에서 전도, 교육, 봉사라는 3대 목표 아래 첫 목회에 심혈을 기울였다. 부임 후 1년에는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고, 그의 열성적인 목회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과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예배인원이 3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종말을 고하고 공산주의 정부가 북한에 세워지자 한경직 목사는 남한으로 탈출하게 된다

1945년 12월 2일에 첫 예배를 드리면서 영락교회의 전신인 베다니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창립 1년이 안 된 짧은 역사에도 베다니교회는 성장을 거듭해 1946년 11월 영락교회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된다. 늘어나는 교인들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를 2부로 드리게 되었고 1950년 5월에는 아름다운 석조전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하지만 한 달여 만에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을 떠나야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경직은 부산, 대구, 제주 등지에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들은 전쟁 이후에도 독립된 교회로 계속 성장해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한경직은 파손된 교회를 수리하고 피난 성도들을 도우며 전쟁 고아들과 미망인들에 대한 봉사활동에 힘을 다하였다.

한경직은 1973년 영락교회에서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사역지가 영락교회에서 한국 교회 전체로 확장된 것 뿐이었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1973년 빌리 그래엄 서울 집회의 산파 역할을 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엑스플로 74의 성공적 개최에 큰 기여를 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 협력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1984년에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식을 주관하는 등 교파를 초월한 복음전도 활동에 매진하였다.